과도한 재선 욕심이 트럼프 오판 불렀다

입력 2020-06-08 17:19   수정 2020-06-09 01:5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텅텅 비었던 미국 뉴욕 맨해튼 곳곳은 며칠 전까지 약탈과 방화로 밤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명품숍 등은 나무판으로 창문과 입구를 온통 틀어막았다. 한때 할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풍경이 세계적 명품 쇼핑거리인 5번가에서 연출되고 있다.

맨해튼이 이렇게 된 건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수많은 잡음을 낳았지만 적어도 지난 3년간 미국 내에선 인기가 있었다. 2017년 취임 후 과감한 감세와 규제 완화로 미국 경제의 부활을 이끌었다. 2018년 초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그 덕분에 기업의 투자와 이익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됐다.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3.5%로 떨어졌다. 1969년 이후 50년 만에 최저 수준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였다. 덕분에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호황은 올초까지 10년 넘게 이어져 사상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과도한 재선 욕심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코로나19가 중국, 한국 등 아시아를 휩쓸 때 그는 감기 정도로 치부했다. 경제를 봉쇄하면 경기가 무너지고, 재선 확률이 낮아질 것이란 단순한 계산 탓이었다. 미국은 금세 코로나19 세계 1위 국가가 됐다.

트럼프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곡선이 하향세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자 즉각 경제 재가동에 나섰다. 이는 코로나19 봉쇄 실패로 이어질 판이다. 지금도 미국에선 감염자가 하루 2만 명 이상 늘고 있다. 5월 초와 비슷한 수준의 감염 추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18개 주에선 감염률 곡선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25일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봉쇄에 지치고 인종차별에 마음 상한 미국인들을 다독여야 할 시점에 트럼프는 군대와 최루탄부터 들이댔다. 인종주의자의 발언으로 유명한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문구까지 써가며 핵심 기반인 보수적 백인들의 지지를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유색인종, 저소득층 등의 극렬한 분노를 불렀고 순식간에 전국적 유혈 폭동 시위로 번졌다. 시위에 나온 한 여성은 “코로나로 죽으나, 인종차별로 죽으나 어차피 죽을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시위엔 백인 젊은이들도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다. 트럼프보다는 흑인들의 아픔에 공감한 것이다.

트럼프가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시위대는 그다지 겁내지 않는다. 미국엔 인구수보다 더 많은 총기가 풀려 있다. 잘못하면 군과 시민의 시가전으로 번질 위험까지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까지 군 투입을 반대하고 나섰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트럼프는 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배치됐던 주방위군 철수를 명령했다.

그새 트럼프의 인기는 폭락했다.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재선 확률을 따지는 도박사이트에서도 뒤처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머물던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정치기부금도 몰리고 있다. 11월 3일 대선까지 다섯 달이 남았으니 결과를 예측하긴 섣부르지만, 재선에 유리한 상황은 전혀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트럼프의 인기는 엉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자 칼럼에서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길 기다리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6월 말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트럼프의 제안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칼에 잘랐고,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의 핵심인 미 농산물 구매를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모든 건 다 재선 욕심에서 비롯됐다. 정권 연장에 대한 집착이 미국의 혼란 그리고 자신의 재선 실패 위기를 부른 것이다.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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